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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다시 시작.


백수 생활 2년 차.
솔직히 내가 이렇게나, 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백수 생활을 할 줄은 몰랐다.


2011년, 학생 신분의 피니시 라인에서 쇼트트랙 선수처럼 사회인으로써의 스케이트 날 내밀기를 시도했으나, 처참하게 탈락을 맛 보았다.
그렇다고 내가 좌절하거나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많이 잃었으나 애당초 남들보다 조금 많았기에)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아쉬운 건, 지난 한 해 동안 난생 처음 백수로 1년을 지냈는데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이렇게 잠들었던 블로그를 깨워보기로 했다.




내가 더 얼마나 이 신분을 유지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이 순간은, 이전에 계속 학생 신분으로 어딘가에 매여 있었고 앞으로도 사회인이 된다면 소속에 매여있을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유일하게 아무런 소속도 없이, 매여있는 곳 없이 살아 갈 순간일지도 모른다.


마치, 최인훈의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외치는 '중립국!'처럼 말이다.


좌우대립이 횡행하는 난세에서 결연히 자신의 길을 걷는 아나키스트처럼,
무언가를 생각하고, 써야겠다.


내가 이렇게 결연한 이유는, 내일이 시험이기 때문이다.
시험을 앞두고 딴 짓을 하는 건 길티플레져, 두려움 속의 쾌락이기 때문이다.


아하하하하.


p.s. 가능하다면 여행기도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그나저나 스킨 바꿨더니 앞에 여행기 사진 배치가 이상해졌네. 닝기, 알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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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in Landshut

그새 정들어버린 The Tent. 아침 일찍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발이, 아니 자전거바퀴가 쉽게 굴러지지 않았다. 수없이 작별인사를 고한 후 오후 6시가 되어서야 그곳을 나설 수 있었다. 마틴, 앤디, 게라드, 프랑코, 프랭키, 야릭, 이레나, 마르코스... 그리고 보스까지. 너무나 좋은 친구들 덕분에 뮌헨은 너무도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겨우 5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머물렀을 뿐이지만, 뮌헨을 여행지가 아니라 집처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들 덕분이었다. 그 곳을 떠난 지금도 아련한 노스탤지어가 느껴질 정도다. 인연이 닿는다면, 우리는 분명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아니 설령 다시 만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내 마음 속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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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되는 한국인 손님들을 위한 배려


그나저나 지금 일기를 쓰는 이 곳은 뮌헨에서 조금 북쪽의 도시 Landshut 근처 어딘가이다. 바야흐로 약 2주 전, 잠깐 들렀던 이탈리아 캠핑장에서 만난 독일인 가족들은 우리더러 자신들이 사는 곳을 지나면 들르라고 했다. 독일인들은 빈말을 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그래서 정말 그리로 갔다. 무작정 Landshut에 도착해 전화를 했고, 그들은 우릴 데리러 왔다. 뭐랄까,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왔어야 했던 것인지, 조금은 마지못해 반겨주는 분위기였다. 어쩌면 너무나 가족같았던 The Tent를 떠나와 비교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이 배부르고 등따신 집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쓰면서 스스로도 놀란다. 가난한 여행객 주제에 난 얼마나 대단한 호사를 바라는 것인가! 요 며칠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렸더니 본분을 잊어버린 것 같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Boettcher 가족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렇게 벌써 어제가 되어버린 추억을 가슴 속에, 그리고 일기장에 품고, 하루가 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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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줄 수 있는 건, 이 작은 기념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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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Munchen 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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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지는가, 독일에서의 아침식사 시간에 울려퍼지는 사물놀이라니. 아침식사 시간에 음악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전통음악으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궁금해하는 그들을 위해 내가 이 순간을 위해 MP3에 담아 온 사물놀이 가락을 들려주었다. 작은 스피커를 통해, 뮌헨의 한 아침식사 시간이 갑작스레 신명의 장이 된다. 한국인이 들어도, 심지어 풍물패에서 활동하던 나도 가끔은 시끄럽고 불편한 소리로 느껴지는 이 장단들에도 그들은 그저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다시 한 번, 이 곳 사람들에게 마음 가득 감사함과 애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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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마치고, 성원이의 바람대로 오늘은 다카우 수용소에 가기로 했다. 마치 현지인인양(외모는 전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열차를 잡아타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출출해 도너케밥을 사먹으며 도착한 다카우 수용소는 뭐랄까, 너무도 화창했던 날씨와는 달리 무거웠다. 한때 너무도 끔찍했던 역사를 간직한 공간이기 때문일까. 둘러보는 내내 내 마음도 무거워졌다. 다카우 수용소의 역사가 끔찍했기 때문이었지만, 그건 주된 이유가 아니었다. 비슷한 역사를 경험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잘 모르면서 머나먼 독일에서 이런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 도리어 더 미안하고 죄송해서, 그래서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학교에서 버스타면 10분이면 가는 서대문 형무소조차 가본 적이 없는 나는, 괜한 죄책감을 이 머나먼 독일 다카우에서 그렇게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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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를 둘러보고 나온 다카우 하늘은 여전히 너무나 화창했다. 한때는 수감자들이 갖은 고초를 당했을 드넓은 수용소 운동장에는, 이제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조형물만이 한 켠에 세워져있었다. 운동장 반대편에는 다양한 종교를 가졌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기독교, 천주교, 유대교 등 각각의 종교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세워져있었다. 수용소를 나서려는데 건축물 중 하나인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린다.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정해진 시각에 항상 울린다는 종소리를 들으며, 다카우 수용소의 희생자들 뿐 아니라 세상 모든 무고한 희생자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시길 나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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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 다녀와서는 어제 못다한 뮌헨 관광을 더 했다. 사실 수용소에 다녀와서 엄숙한 마음을 채 몇 시간도 간직하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계속 가라앉은 마음으로 있기엔 뮌헨은 너무 유쾌한 도시다. 마음을 다 잡고, 말로만 듣던 '마스'를 마시러 갔다. 1리터짜리 맥주인 마스는 술에 별 관심없는 나에겐 꼭 경험해보아야 할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뮌헨에 가면 다들 들른다는 호프브로이하우스로 향했다. 이 곳 브로이하우스는 가게에서 안주거리를 시킬 필요없이 미리 사서 가도 된다기에 가게 앞의 길거리 상점에서 엄청 두꺼운 돼지고기 덩어리를 사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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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넓은 홀에 들어서서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생맥주 1리터를 혼자 들이키기엔 조금 무리일 것 같아서, 맥주와 레몬에이드를 섞은 라들러를 시켰다. 우아하게 돼지고기 덩어리를 썰며 라들러를 들이켰다. 그리고는, 엽서를 썼다. 시끌벅적한 뮌헨의 브로이하우스에서 까맣다 못해 술이 올라 검붉은 동양 청년이 혼자 앉아 엽서를 쓰고 있으려니 이상하기도 했으련만, 그런 것 따윈 생각도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정신이 없는 만큼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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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집같은, The Tent에 돌아왔다. 아, 오늘은 파티를 한다고 했었다. 주변 친구들을 모두 불러 한창 바베큐를 굽고 음식을 장만 중이었다. 성원이는 먼저 와서 찜닭을 만들고 있었다. 혼자 놀다 온게 미안해서 도운다고 도왔는데 음식도 잘 못하고 달리 도울 수 있는게 없어서 미안해지려다, 나에겐 카메라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조심스레 제안을 했다. 다같이 사진을 찍자고.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삼각대를 구매했다. 무려 1kg이 넘는 삼각대를 고민 끝에 구매했지만, 비행기를 탈 때부터 자전거에 매달고 다니면서까지 문제만 일으키는 삼각대가 쓸데없는 짐에 불과하다는 후회를 계속 했다. 그치만 오늘, 그 후회가 말끔히 사라졌다. 오늘만큼 이 삼각대가 가벼웠던 적이 없다. 찍은 사진을 The Tent의 컴퓨터에 옮겨주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그 컴퓨터 배경화면이 되었다. 앞으로 여기 머물 친구들이 이 사진을 보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사진에 함께 찍힌 모두의 웃음만큼이나 행복해졌다.



이제 여행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렴풋이 그런게 아닌가 한다. 여행지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무엇보다도 때로는 혼자, 때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 이 모든 걸 다 해버린 오늘, 나는 진정한 여행자가 된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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